도서관에서 우연히 "
유식의 즐거움 - 3. 지식의 박물관"이란 책을 보았다.
"상식과 교양으로 알아야 할 현대 지식의 모든 것"이란 표제도 써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요즘 이런 류의 책에 흥미가 있으시길래 일단 빌리기로하고 꺼내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기 전에 미리 한 번 내용을 훑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 앉아서 대충 넘겨보았다.
겉으론 완전 무국적의 책처럼 위장을 했지만 딱 보면 일본서적의 해적카피본같다.
이 책은 10권짜리 시리즈로 출간된 것 같고, 내가 본 것은 3권이므로 다른 권들도 이런 식인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건 이 책 (3권)은 일본책(또는 출간물)의 내용을 그냥 가져다 베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보면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역겨움을 느낀다.
예전부터 이런 종류의 책을 종종 보아왔다. 특정인 또는 "XX편집부"등의 이름을 갖다붙이고, 그 원본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다 붙인 책들. 거기다 교양에 관련된 책일수록 종종 그런 것 같다.
육문사의 중국고전시리즈가 대표적인 거다. (2차대전전 일본 대학교에서 시리즈로 출판한 시리즈를 그대로 번역한 거가 그 시리즈의 시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2차대전 이전에 출간된 그 원본을 읽어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하다.
만약 당당하게 판권을 주고 계약한 것이라면 제대로 출처를 밝혀라. 이 책 그 어디에도 일본의 출판사나 베이스가 된 서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어떤 소스를 짜집기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책을 통짜로 베낀건지, 어떤 간행물의 컬럼같은 코너를 모아 짜집기한건지.
다만 확실한건 이 책의 내용을 쓴 사람은 한국사람일 리가 없다. 그리고 책의 편저자라는 "휘닉스 기획편집팀"이 뭔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 번 설명해보겠다.
1. 책 내용에 종종 언급되는 사례들이 전부 일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므로 종종 근거로서의 사례가 나오는데, 그 사례의 상당수가 일본의 예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의 예는 없다) 특히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의 사례로 일본이 나온다.
그 사례도 또한 일본인이라도 잘 모를듯한 마이너한 사례들도 있다. 한국인에겐 전혀
상식이 될 수 없는 내용을 "상식"이랍시고 설명하는 것이다.
예1) 첫째 질문부터 나온다. 매킨토시라는 품종의 사과에 대한 내용인데 맨 마지막줄에 "일본에는 '아사히'라는 품종으로 적지만 팔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난 일본에 가본 적도 없는데, 일본에서도 적지만 팔린다는 그 아사히가 무슨 상관인가? 아니 그 보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매킨토시 품종 이야기는 왜 안 나오는 것인가? 하다못해 "우리나라에는 아쉽게도 이 품종의 사과는 팔지 않는다"라는 말이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예2) 바로 2장만 넘어가면 검은 고양이의 불길한 이유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구절절 서양이야기를 한 다음 맨 마지막에 "이러한 서양 민간사상의 이미지가 들어오기 전에 일본에서는 고양이를 색으로 길조/흉조로 나누는 습관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일본의 민간풍습이 어땠는지 아는게 한국인으로서 상식이나 교양인가? 어째서 우리나라의 고양이에 대한 민간풍습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
예3) 이게 더 가관이다. 바로 그 검은 고양이의 다음 질문. 숲에서 곰을 만나는 이야기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 곰과 마주치게 될지 모릅니다 일본에서도 북해도에는 큰곰, 혼슈이남에는 흑곰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언제 어디서 곰과 마주칠지 모르는" 곳이 되었나? 그리고 왜 일본의 북해도와 혼슈의 곰 이야기만 하는가? 아니 미국이나 중국 곰이야기라도 하지, 정말 이게 대한민국 책인지 일본 책인지.
사례는 끝이 없다 .이런 그냥 순서대로 처음 다섯장을 넘기면서 나온 사례들이고 여기다 다 쓰려면
책을 전부 다 베껴써야 할 지경이다. 염분섭취에서도 오직 "일본인의 엽분섭취량" 이야기만 나오고 굴(먹는)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본 히로시마의 굴 양식 이야기다. 스타벅스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째서 "일본에도 400개의 점포가 있는 스타벅스는..."으로 시작하냔 말이다.
이게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쓴 상식/교양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2. 요상한 번역어가 종종 등장한다.이건 번역가의 실력이 후달릴 때 종종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그 나라의 외래어표기를 우리나라로 옮길 때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우리나라식 외래어 표기법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를 일본식으로 "오데코롱"이라고 표기한다. 물론 50개음이 가나로 표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뭔지 모르는 번역가는 이걸 그대로 다시 "오데코롱"이라고 우리나라 책에 써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표기론 "오드콜로뉴"가 맞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걸...(이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번역본중 하나에서 발견했던 오류이다)
이 책에도 종종 그런 오류들이 자주 등장한다.
호르말린? (형상기억셔츠가 다리미가 필요없는 이유) 아니, 포르말린도 모르는건가. 당연히 F음이기 때문에 일본어에선 호르말린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호르말린이라고 누가 하나? 그럼 호름알데히드인가?
코크피트? (콕피트) 코리오리의 힘? (콜리올리) 로마의 시인 베르기리우스?? (베르길리우스)
아니 이정도 단어도 모르고 지금 "상식/교양책"을 번역하고 계신겁니까...
3. 일본에서만 쓰는 표현 / 일본 고유의 문화를 상식/교양이라고 주장한다.이건 말그대로 넌센스다. 교양/상식책 주제에 우리나라에서 교양/상식이 되기 힘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올림픽을 "오륜"이라고 하는 이유?
그게 뭔 소리야, 올림픽이면 올림픽이지...
아, 물론 그건 우리나라에서의 상식이고 일본에서의 상식은 "올림픽=오륜"이다.
우리나라에선 굳이 오륜이라고 하면 올림픽 마크의 그 다섯개의 동그라미를 뜻하는 정도? 하지만 일본에선 올림픽(오린핏쿠)라는 단어를 쓰기가 힘들어서 그냥 오륜이라고 쓴다.
이번 올림픽때도 야구때문에 종종 일본 신문을 웹사이트로 봤는데 "五輪野球"라고 써놓는다.
우리나라 스포츠신문에서 "오륜야구"라는 단어를 보신 분 계십니까?
거기다 친절하게도 이 "오륜"이라는 단어가 일본의 스포츠 평론가인 고 가와모토 신이치씨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서 착안해서 쓴 단어라고 알려준다. 정말 재미있는 상식이다, 단 일본에서만...
그외 낫토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던지 패션후루츠가 일본에선 꽃이 시계를 닮았다고 해서 "시계초"라고 불린다던지, 참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내용도 자주 나온다.
위의 내용을 굳이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적어둘 필요 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한두장 읽다보면 반드시 나온다. -_-
책 자체가 "
일본인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하다못해 출판사가 "휘닉스"아닌가.
불사조를 뜻하는 Phoenix의 올바른 표기법은 "피닉스"이다.
아아 물론 일본에선 "휘닉스(휘니쿠스)"가 올바른 표기법이지요.
출판사가 자기 회사 이름조차 제대로 된 표기법도 안 쓰는데 (물론 휘닉스가 고유명사로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우기면 되지만) 뭘 더 바라겠는가. 그나마 같은 시리즈의 나머지 9권은 우리나라관련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일본책을 베꼈을 거라고 추측한다)
더 짜증나는건
가증스럽게도 책 시작에는 "책을 읽는 이유- 인조 때 학자 조위한이 운운 "하는 식으로 그럴듯한 우리나라 고사를 적어놓았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펴낸 책인 것처럼. 아마 이 책에서 유일하게 한국고유의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연히 발견한 책을 읽다가 열받아서 한 번 포스팅해봤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지적 해적행위가 만연하는 이상, 교수들의 논문표절이나 학생들의 레포트 베끼기같은 풍토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의 것만 베껴내는 동안 우리나라가 이공계 노벨상(경제, 평화, 문학말고)을 받을 일은 요원할 것이다.
이런 걸 베끼려면 제대로 판권주고 베끼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꾸자. 하다못해 한국의 스타벅스가 점포가 몇 개인지 스타벅스사에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문제다.
그리고 언젠가 언급하고 싶지만, 제발 실력없는 인간들은 번역 좀 하지말자. 그건 인류의 지적유산에 대한 죄악이다. 5만원의 거금을 주고 산 "전쟁의 역사 -몽고메리 저"를 그 저질번역에 분노해서 남에게 주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p.s. 오늘 하루 본 책가지고 써낸 내용이지만, 틀린 내용은 없을 거다. 조금 흥분한 점은 있지만...다만 출판사가 정당한 계약으로 낸 글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의(물론 일본인의) 블로그 내용을 짜집기한것일수도 있을테니까
-_- (아마도 일본에서 출판된 책일 가능성이 젤 높지만)
p.s.2 책 앞부분에 편저자인 "휘닉스"기획편집팀 설명에 보면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는 출판전문 집단이다. 또한 좋은 책들을 골라 번역하고 소개하고 있으며..." 라고 되어있다. 슬쩍 "번역"이라는 단어를 낑겨넣었다. 근데 이 책의 서문이나 책 출판정보엔 전혀 번역이라는 이야기가 없는것인가...(인정했다면 아마 '휘닉스'기획편집팀 역저 라고 써놨겠지)